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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아들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항상 얼굴에 웃음을 머금게 할수만 있다면, 그 호기심 가득한 얼굴에 만족할 만한 답을 해줄수 있다면, 험난하게 흐르는 세상의 풍파로 부터 난 얼마나 오랫동안 이 아들의 방패 막이가 될수 있을까...?
어느 광고의 내용을 보면, 만주를 내달리던 징기스칸이 열정이 없었다면, 용맹스럽게 말달리던 장군이 아니라, 그저 양치기에 불과 했을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없는 사람인가...
밤은 깊어 가는데, 삶에 대해 고민하는 그 많은 삼십대중의 한사람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계획은 있으나 실천되지 않아 그저 꿈에 지날뿐이요, 미래에 대한 설계는 구체화 되지 않아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은 생각으로 굳어져 버리고, 곧 잊혀진다.
열정을 갖자. 삶에 대한 열정을...
새로움이라는 것은 단정지울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묘한 매력은 바라 보는 상황 혹은 사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든 그렇지 않든간에, 그 대상의 피상적인 모습과는 상관없이 새로움이라는 단어로 묘사 할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새로움이라는 모습을 씌우려 한다. 나 자신은 옛것이지만, 다시금 새로운 모습을 갖추려고 한다.
2005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난 예기치 못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일단 삶의 보금자리를 전에 살던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으며, 나만의 독자적인 방을 가져, 서재다운 방을 마련한데 있다.
첫 출발은 늘언제나 떨리는 마음이 동반하듯,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마음도 다를바 없다. 매년 새해가 되면 새출발이라는 글귀와 함께 나의 다이어리의 첫 메모지를 장식하던 새해의 다짐들. 또 머지 않아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재설정하며, 나의 삶은 늘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2005년은 뭔가 다르리라고 다짐하며, 이런 저런 일을 저질렀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보금자리만 옮겼을뿐, 달라진건 없었다. 늘 식상한 글귀로 내 자신을 장식했던 그런 구습을 버리고, 뭔가 다른 모습을 갖추려고 한다. 그래봐야 뭐 달라지는 건 아니고, 단지 예전의 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에 불과할테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것 조차도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주저 앉지는 않으리라 다짐한다. 바로 이 시점부터 나는 내 자신에게 뭔가 이루겠노라고 작정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말이다.
봄을 맞아 피어 있는 벗꽃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음까지 개운해 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겨우내 닫혀 있던 그 무언인가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자녀가 태어난 순간 보다는 못하지만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살아 숨쉬는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는다. 자연의 모습을 담은 우리 자신들도 마찬 가지 일것이다. 삶속에서, 한동안 움추러든 때도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활짝 만개 하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나무가 꽃 피우는 것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저 아무 노력없이 꽃을 피운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드려다 보면, 그 두터운 나뭇가지 안에서 다양하고, 부지런한 생명의 활동을 볼수 있다. 겨우내 준비 해온 결실이 꽃잎으로 살아나며, 후에는 잎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풍성한 열매들로 짧은 한 주기의 끝을 장식 한다. 인생에는 풍성한 시기도 있을 것이며, 빈곤한 시기도 있을 것이며, 또한 어쩔 수 한없이 움추러 들어야 하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기 개발은 늘 언제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영혼을 살찌우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꽃이 만발할 그 시기를 위해서...
규진이 백일날, 스튜디오에 가지 않고, 후배에게 카메라를 빌려 집에서 찍었다. 썩 잘 나온 사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나온 사진이란 생각이 든다. 나중에 자식들이 성장하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줄수 있는 것은 많이 있겠지만, 훨씬 더 나이가 들면, 자신들이 기억 못할, 추억을 남겨 주고 싶다. 바로 사진을 통해서.
저녁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늘상 듣는 극동 방승에서 한 목사님께서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클린트 이우스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목사님은 그 사람이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것을 이루어 낸 업적을 높이 사면서, 우리도 나이나 자신의 환경에 상관없이 그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
지나온 나의 삶을 되돌아 보면,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자 할때, 항상 나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나의 환경 탓만을 했던 나의 나약한 모습이었다. 2005년에 새로운 다짐을 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지금 이 출발을 어떻게 시작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고민과 생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에 좀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다. 단순한 새 출발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새해 첫날 흔히 작성 했던 새해 계획은 더더욱 아니다. 3월이 다 되어서 내가 이른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내가 삶을 바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어 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바라 보는 인식의 변화는, 먼저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서 듣게된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자들을 중보 하시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부터이며, 그와 맞물려, 지금 나의 아들-3달하고 3주가 된-을 바라 보는 시각 때문이다.
세상에서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사랑스런 나의 아내, 이쁘기만한 나의 아들, 그리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신 나의 어머니가, 원래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소유가 아닌것이다. 원래 하나님에게 속한 것들, 혹은 사람들 이었으나, 단지 나에게 맡겨준것 뿐이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나의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가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물론 나의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반대 일수 있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그만한 권세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단지 이것을 나는 선포만 하면 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면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일기 때문이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평화를 누리며, 모든 치유와 나음을 입었는데, 단지 믿음이 부족한 탓에 그것을 누릴수 없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의 앞길에 놓여진 모든 나관을 헤쳐 나가고 싶은 것이다.
나이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나이로 인해서 그냥 제자리에 주저 앉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으로 나의 삶을 보다더 능력있고 풍성하게 이끌어 나가자.
천안대에서의 강의 첫날이다. 강단에 설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칠판 앞에선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과연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곤 한다. 오늘도 그러한 의문은 여지 없지 나에게 다가 왔다. 서로의 필요를 맞춘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양편 중에 한쪽이라도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 더더욱 힘들다. 서로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그저 왠지 저멀리 날아가 버리는 메아리 같기만 하다. 가을 학기의 시작이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어느때 보다 더 힘찬 발돋움으로 출발 하고 싶다. 그리고 뒤쳐지지 않는 달음질을 하고 싶다. 결승선에 다가 서는 그때까지 더욱 더 열심히 달려 볼란다.
잠을 너무 일찍 잔 탓인지.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긴 한데 말이다. 아마도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영국에서의 시간도 2주가 됐다. 별것 안한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는것 없이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돌아 다니기도 많이 돌아 다녔다. 영국에서 런던이란 곳은 참으로 독특한 도시다. 볼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멀리 돌아 다닐 필요가 없다. 버스를 타고, 혹은 지하철을 타고, 아니면 걸어서든 조금만 가면 여기 저기 볼 거리 들이 많이 있다. 특히 오래된 건물들은 여기 저기 널려 있다. 이곳에선 건물이 조금만 낡으면 헐고 다시 짓는 한국과는 달리, 되도록이면 기존 건물을 유지 하려 한다. 그래서 예전에 귀족들이 살았을 법한 건물을 지금은 개조해서 우리나라의 주상 복합 건물처럼 1층은 상점으로 2층이나 3층은 사무실로, 맨 위층은 주택으로 쓰기도 한다. 새로 지은 건물 보다는 기존의 건물을 다시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건물은 한쪽면이 예전에 허물어 졌던 성벽을 그대로 쓰는 건물도 있다. 우리 나라는 옛것은 너무 소홀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면은 많이 본받아야 할점이기도 하다. 보수 공사가 한창인 세인트 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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